책이 될 이야기2012/02/01 13:17





한가로운 평일 오후, 동네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이리저리 물 만난 마냥 돌아다니다 철학 코너 맨 끝에 있는 '사르트르평전'을 꺼냈습니다. 사르트르 철학은 책마루가 자주 인용하지요.

근데 이 사람 ‘어떤 사람으로 존재했나' 궁금했습니다. 철학 이외에 인간적인 모습들 말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인간은 다른 본질이나 가치에 기대지 않고 철저하게 홀로 남겨지며, 때문에 스스로 절망하며 동시에 자유롭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불안은 실존에 관한 인간 고유의 구조적 감정인 것이다"

"인간이 실존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함으로써이다. 즉 인간은 그가 곧 이 넘어섬이며 오로지 이 넘어섬과 관련해서 사물을 파악하기에. 바로 이 넘어섬의 중심에, 넘어섬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 프랑스




돈 많은 귀족 출신. 어릴적 할아버지 서재에서 세계를 만났고, 의식 속 이미지에 학문적 관심을 가졌으며, 몇몇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당했지만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고, 색소폰 연주가 수준급이었으며, 가두시위에 나서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사랑도 진하게 했고, 실존주의 철학자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다.

아, 노벨상은 작가의 독립성을 심하게 훼손한다며 처음으로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68혁명 구호. 당시 학생들에게 그의 저서 '존재와 무'가 인기였답니다. 어려운 책인데. 뭐 프랑스 학생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정도는 필독서라고 하더군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실존'이 당시 대중에게 감명을 준 것일까요.
그는 그렇게 기여했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이 있었겠지만, ‘홀로 남겨졌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한다’는 그때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크게 작용했나 봅니다.

누군가는 이를 낭만주의 이후 처음 있는 ‘정신혁명’이라고 하더군요.



“나에게 경의를 표하며 잔을 높이 치켜드는 정장 차림의 신사들과 야회복 차림의 부인들로 가득한 댄스홀. 이것은 완전히 에피날의 판화를 상기시키는 이미지지지만, 나는 어릴때부터 이런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허세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인기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그는 스스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에서 무로 돌릴 때 사람이 거기에 홀로 남겨졌고, 그래서 선택해라. 결론만 보면 시카고학파. 신고전주의경제학자들 정도가 할법한 말인데, 그의 강연을 묶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다보면 그가 경제학자인가? 정체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맑시스트들은 그를 비판했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우리네 일부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저 프레임. 인권 같은 것 얘기하면 득달같이 '좌클릭'이라 말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저걸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단순하게, 진보와 보수는 변화 속도의 차이. 좌는 집단, 평등을 주요 가치로 뽑고, 우는 자유, 개인을 중요시하지요. 

그렇담 실존주의는 어디에 속하나. 그걸 두고 논쟁했나봅니다.

그땐 그 프레임이 제일 중요했으니 말이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신, 도덕, 품위, 젊음, 노년, 우파, 좌파, 극우파, 극좌파, 공산주의, 반공상주의, 국가의 명예, 저항운동 등의 이름으로 그를 비판했답니다. 거의 모든 계층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렸다는 것인데요.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철학자의 사생활을 그렇게 씹어댔답니다.

그건 ‘유희’라는 것에 그의 태도가 관대해서 그랬나봅니다. 사람의 ‘쾌’라는 것에 심각하지 않았으며, 사생활도 그의 연장선상이었지요.

플라톤은 “웃음에 저주가 있기를”이라고 말했고, 루소는 “쾌락에 전쟁을 전포하라. 진리는 눈물, 향수, 의기소침, 완전한 고통, 죽음 속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둘에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 영화 '사르트르 앤 드 보부아르가'




철학은 어려워도 삶은 유쾌하게 살았다고. 그리고 사랑도 진하게 했습니다.



“내 생애에 무슨 일인가가 발생한 것 같소. 내가 정념이나 기적 없이 속내로부터 있는 힘껏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말이오. 그 한 사람이 당신이어야 하오. 내 사랑 나와 긴밀하게 섞인 나머지 사람들이 나와 구별할 수 없는 그런 누군가는 당신이어야 하오”

“나는 당신과 분리될 수 없소. 왜냐하면 당신은 내 인격의 일관성과 같기 때문이오. 나의 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오. 당신은 항상 나 자신이오”

“당신은 바로 당신을 통해 우리들 각자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실존을 대신하는 이 우연성의 보따리, 오해와 우연이 섞인 이 보따리가 필연성을 찾게 되는 그런 존재라오”



그가 보부아르가에게 보낸 글. 참 진하게 했지요? 이정도면 가사를 써도 됩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가사도 여럿 썼다고 하네요. 이 둘의 이야기는 TV영화로도 제작 됐습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 혹은 마지막 철학자.


제 보기에 사르트르는 인류학자가 아닐까 하네요. 철학은 어차피 인간에 관한거고, 그의 철학은 무로 만들어버리는 무의 상태에서 인간밖에 없고, 인간이 가진 능력에 의미를 부여하니 말입니다.

이걸 받아들이면 사람 관계, 인간 존엄성 얘기를 제한적이지만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불안’이란 것이 ‘구조적인 감정’이란 그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가 그것이 ‘숙명적인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아서.


‘넘어섬의 중심에서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실존한다’

이거 참 매력적인 말입니다. 68혁명 일어날만 하지요?



여러 말 남겼지만, 그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

"아롤과 철학을 논하는 것보다는,
 한 명의 여자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다"



알수록 재미있는 철학자, 작가입니다.



독자 여러분, 2012년 아니 아무때나 사르트르를 읽으세요.

철학서, 소설 많이 쓰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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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 책마루